카르마ㅤ [967566]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1-11-07 21:17:36
조회수 1,017

1920~30년대 연맹 단체 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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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사하는 사람들도 한번 읽어보셈.


그냥 제가 외울려고 정리한거에요..


1. 동방 무정부 주의자 연맹


1928년 난징에서 조직됨


설립자는 대표적으로 신채호



'조선혁명선언'을 기초한 신채호가 중국인과 연맹하여 조직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 단결하고 국제적 유대를 강화 -> 민족의 자주성과 개인의 자유를 목적


그 이후 활동은 크게 x



2. 일본반제동맹


1929년 설립되어 제국주의 타도를 위해 조선인과 일본인의 공동투쟁을 강조. 190년대 후반 활동 종식


목적은 식민지 민족으 해방을 지지 , 제국주의의 맞서고 노동자 농민을 위함 -> 사회 혁명이랑 관련되는듯


-> 식민지 해방을 주장하고 만주사변의 전후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판 .



3. 한중항일대동맹 


1931년 , 대표적인 설립자는 김구 상해에서 조직됨. 임시정부가 한국과 중국의 독립운동 지원을 목적으로 함


김구와 관련되어있고 , 해당 단체가 조선 총독을 사살하려고 시도한 점이나 관동군사령관을 폭살시키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이 된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관리가 심해져서 유명무실해진듯함



4. 항일구국연맹


1931년도 . 한중일의 무정부 주의자들이 결성함. 중국의 친일파를 처단하려고 한 점등에서 미루어볼때 의열단의 성격이 있음. 


만주사변을 계기로 결성됨.


동방 무정부 주의자 연맹과 비슷하나 둘의 차이점은 의열투쟁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


또한 설립자도 완전히 다르다. 



5. 한인애국단 


1931년이다. 상하이에서 김구가 세운 독립운동단체. 즉 한중항일동맹과 같은년도 같은 장소라고 봐도 된다.


또한 위와 다르게 여기는 온리 조선인만 있는듯.


다만 위에서 언급하듯이 여기서는 목적이 주요 요인 암살이고 . (한중항일대동맹은 독립운동 지원이 목적)

1932년 이봉창 의거와 윤봉길 의거를 거행함.


그 후 1936년에 해체됨




6. 조선 혁명군


1929년에 결성. 일본 반제 동맹과 같은년도이다.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한중연합작전을 추진하였다.


연합작전은 실패할뻔했으나 ,


1932년 양세봉과 김학규가 중국의용군과 합세하여 남만주에서 일본군을 격퇴함(영릉가 전투)


이를 통해 첫 한중 연합 작전으로 기록되었고 유대가 공고해짐.


이후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만주 각지에서 활동했으며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5만명 정도를 군사 훈련시킴


이후 1933년 일본군이 영릉가를 다시 재침공했고 , 양세봉 지휘하에 흥경을 사수하려 했고 일본군을 저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남산성으로 퇴각하게 되었음


이후 구심점인 양세봉이 1934년 일본군에게 피살당하고 일본군과 교전에서 열세에 몰리게 되면서 조선 혁명군 정부로 뒤바뀌며 병력이 많이 줄어들게 됐다.



7. 한국독립군.


위와 비슷한 1930년 생김. 그러나 조선혁명군은 남만주지만 한국독립군은 북만주에서 활동


마찬가지로 만주국 수립 이후 한중연합작전을 펼쳤고 , 1932년부터 본격화 됐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쌍성보 전투가 있으며 , 북만주 쌍성보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사살시키고 물자를 노획함.


또한 1933년 대전자령 전투가 대표적이다. 대전자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매복하여 전멸시키며 막대한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이후 공산주의자의 이간과 노획품 갈등으로 한중연합은 와해됐고 1934년 해체됐다.



8. 동북항일연군


1933년 결성된 동북인민혁명군을 보태로 함. 중국 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투쟁 군사 조직이다.


조선인과 중국인 유격부대를 통합한 군사조직이고 김일성이 여기에 참여했다. 항일계열 군사조직 중 제일 컸다. (약 3만명)


그러나 중일전쟁이후 1942년 소멸했고 , 여기 있던 핵심 인물들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조선의 핵심인물이 됐다.


유명한 전투는 보천보 전투가 있으며 민간인 2명을 살해하고 이후 경찰추격대와 싸워 7명을 사살했다.


(참고로 대전자령 전투는 일본군 부대를 전멸시켰으며 전리품으로만 군복 3천벌 이상이었다.)



9. 한중항일동맹회


1935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한국 독립을 달성함이 목표이며 150명 정도의 병력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0. 조선의용대


1938년. 중국 후베이성 한커우에서 결성됨 (현명칭 우한). 국민당 정부에서 후원하였으며 중국의 제 2차 국공합작 이후 통일된 후원으로 창설됨. 그러나 국민당 내 장제스의 영향력이 컷다.


의용대는 정규 전투부대가 아니라 게릴라전을 수행하였으며 선전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1941년 공산주의자 최창익이 중국 공산당과 함께 의용대 통제권을 장악했다. 이후 조선의용군(1942)로 개칭됐고 이후 북한 성립 후 동북항일연군처럼 핵심 권력층이 된다.



11. 한국 광복군 


1940년 충칭에서 조직됨. 지청천(한국 독립당의 당군)이 지도자로 있었으며 활동기간은 1946년까지로 결국 일제를 패망을 본 독립단체라고 봐도 된다.


장제스의 제안으로 임시정부가 광복군 조직을 추친했고 , 지청천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만들어졌다.


설 이후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한인 항일 군사조직을 흡수하는데 노력했고 무정부주의 계열 공작대를 편입하였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고 1943년 영국군과 버마 지역에서 싸웠다.






그냥 무지성으로 외우기보단


어떤 단체였고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외우는게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저도 약한부분이라 40분 정도 정리하면서 


혼자만 보긴 아까워 올려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동사러들 모두 만점 받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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