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엽 국어] 독특한 시상 전개모음(15)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1. 대립적 이미지에 따른 시상전개
대립적 이미지에 따른 시상전개는 주제와 직결되는 대립적 의미의 시어나 이미지를 등장시켜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보통 한쪽은 긍정적 이미지, 다른 한쪽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서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신동엽,
위 시는 통일을 상징하는 따뜻한 이미지의 ‘봄’과 분단의 상황을 상징하는 차가운 이미지의 ‘겨울’을 대립시키면서 시상을 전개하여 평화로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작품이다.
2. 자유로운 연상에 따른 시상전개
자유로운 연상에 따른 시상전개란 하나의 시어가 주는 이미지를 일상적으로는 관련짓기 힘든 다른 이미지와 연결시켜나가며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을 말한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
위 시는 피아노 소리가 주는 감동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색다른 느낌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자유로운 연상을 계속하며 돌발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자신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어조의 변화에 따른 시상전개
어조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태도의 변화’나 ‘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시적 화자의 정서나 생각이 비통함에서 환희로 바뀌거나, 기대에서 좌절이나 절망으로 바뀌는 것이 시상의 전환이다. 화자의 정서나 태도가 바뀌면 당연히 그것을 표현하는 어조도 바뀌기 마련이다. 따라서 ‘태도의 변화’나 ‘시상의 전환’은 어조의 변화와 함께 나타나게 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황지우,
위 시의 시적 화자는 ‘너’가 오기로 한 자리에 먼저 가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이기를 기대해보지만 ‘너’가 아니기 때문에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곧 기다리기만 했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너’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소극적으로 기다리던 태도에서 적극적, 능동적 태도로 만남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 시상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4. 여러 가지 시상전개의 혼재
여러 가지 방식이 혼재되어 시상이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갈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리켰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이용악,
위 시는 세 가지의 시상전개가 혼용되어 있는 작품이다. 우선 첫 연의 구절이 마지막 연에서 반복되는 ‘수미상관의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2, 3, 4연에서는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화자의 감정을 절제하면서 그 장면을 집중하여 묘사하고 있는 ‘장면의 초점화’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5. 시상의 집약
시상의 집약이란 시상 즉, 화자의 정서나 생각이 하나의 대상이나 하나의 개념으로 응축되면서 구체화되어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 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김춘수,
위 시의 시적 화자는 아내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 치 앞을 못 보게 하는 (‘어둠’과 더불어 아내의 존재를 더욱 가리는) 퍼붓는 비를 통해 문득 아내가 죽었음을 새삼 깨달으면서 느끼는 슬픔과 안타까움의 정서가 부각되고 있다.
6. 시상의 확산
시상의 확산이란 시상의 집약과 반대로 시적 화자의 정서나 생각의 크기가 점차 커지는 것을 말한다.
① 비교의 방식으로 시상 확산
이미지가 서로 유사한 성격을 가진 시어들을 비교하여 그 중 속성이나 성격이 더 작은 쪽의 시어
가 더 큰 쪽의 시어에 포함되면서 이미지를 확장해 가는 방식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위 시에서 나라가 침탈당한 것에 대한 논개의 개인적인 ‘분노’를 집단적이면서도 보다 숭고한 개념인 ‘종교’보다 더 깊다고 표현하고, 논개의 ‘정열’을 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사랑’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논개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우국충정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② 접속의 방식으로 시상 확산
시간이나 공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감에 따라 연결(접속)되어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나 사물을 끌어들여 시상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신(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다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나희덕,
이 시의 핵심 대상인 ‘상현’(오른쪽이 차있는 반달)이 어느 한 순간 화자에게는 능선 위에서 잠시 걸터 앉아 쉬고 있는 ‘임산부’의 이미지로 비춰졌다. 화자가 몰래 그 모습을 훔쳐보는 순간 ‘상현’은 부끄럽게 반응하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 ‘반달’이 인간과 교감함으로서 ‘임산부’의 이미지로 시상이 확대되고 있다
③ 비약의 방식에 따른 시상전개
유사성도 접속성도 없는 별개의 사물이나 관념을 끌어들여 시상을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1
겨울나무들이 동안거(冬安居)한다.
열매들을 다 놓아버린
알몸에 서리 내린다.
2
앙상한 사람들 중에서도
참하게 앙상한 사람은
암자가 불타버린
스님
3
재 한 점,
재 한 점으로 지평선에 서 있는 사람
자코메티 씨에게 인사시키고 싶은데
자코메티 씨는 앙상한 조각들을 남기고
벌서 입적했다.
4
앙상함도 존재의 한 방식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보석
알몸
앙상함의 극치에서 태어나는
보석
알몸
성자
-최승호,
위 시는 ‘앙상함’의 참된 의미에 대해 성찰한 시이다. 시인은 열매들을 다 놓아버린 앙상한 겨울나무의 모습에서 무소유의 가치관을 가진 스님 즉 ‘성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앙상함’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바를 표현하고 있다.
cf) 특정 부분에만 해당하는 시상 전개
① 장면의 초점화
‘장면의 초점화’는 영화의 한 컷(Cut)이나 한 신(Scene)을 보여 주는 것처럼 어느 특정한 장면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거나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② 시상의 마무리
‘시상의 마무리’란 시상을 정리하면서 시를 끝맺는 것을 말한다. 보통시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끝맺음되지만 때로는 마지막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반복 강조하거나 또는 좀 더 과장을 하거나 아니면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③ 생략과 여운
일반적으로 어떤 글을 끝을 맺을 때는 서술어로 끝을 맺는다. 서술어 자체가 ‘~가 무엇이다, ~가 어떠하다, ~가 어찌하다.’와 같은 형태로 어떤 대상의 정체나 상황이나 상태, 아니면 어떤 행위를 설명, 묘사하면서 결론을 내기 마련이다.
만약 이 부분을 생략하면 독자는 생각의 날개를 펼치면서 자신이 다양한 결론을 떠올려 보거나 자기 스스로 정리를 하게 된다. 이렇듯 독자에게 스스로 작품 전체를 다시금 느끼게 하면서 마음의 울림을 주는 것이 여운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여운을 주는 방식은 서술어를 생략하거나 명사로 끝맺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물론 누구를 부르면서 끝나거나 의문형으로 끝나는 경우에도 여운이 생긴다.
★ 선지의 속살
➊ 방 안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두어 시상을 집약하는 것도 좋겠군. (2002년도 수능)
➋ (나)는 색채의 선명한 대조를 통해 표현 효과를 높이고 있다. (2008년도 9월 모의평가)
➌ 어조의 변화를 통해 시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2007년도 수능)
1. 특정한 공간에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나 정서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시상을 집약할 수 있다.
2. 이미지의 대립은 주로 시각적 이미지의 대립과 관련된 문제가 출제 된다. 흰색과 붉은색, 어둠과 밝음과 같은 이미지의 대립이 주는 효과가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3. 어조를 만드는 요소로는 종결 어미의 형태, 시가 가지는 부드러움이나 딱딱함의 이미지, 문체의 종류, 정서의 표출 강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종결어미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나의 종결형으로 간다면 특별히 어조에 의한 시적 긴장이 생기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작품 내에서 종결형 어미의 형태가 자주 바뀐다면 독자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신석정의 를 보면 평서형과 의문형 어미가 반복되다가 끝부분에 가서 청유형 어미가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결 어미의 사용으로 어조에 변화를 주어 시적 긴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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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에서 정열이 사랑보다 강하다고 했는데 왜 덩열에서 사랑으로 시상이 확장되는건가요??
개인적인 정열이 보편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사랑으로 확대가 되었지요. 만약에 이것을 문제로 낸다고 한다면 처리해서 좀더 선지와 아구가 정확히 맞는 진술을 만들겠지요.